한국일보

27. 방황하는 중독 가정들

입력시간 : 2004년 10월 20일 수요일, 미주 한국일보 오피니언

제목 - 방황하는 중독 가정들

날씨가 쌀쌀해지면 중독이 기승을 부린다. 일년 중에 가을과 겨울철은 중독증이 극성을 부리는 때이다. 중독가정에게 연말은 “위기의 계절”이다. 계절적으로 우울 심리가 심해져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독행위를 더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소지품에서 마약 사용 도구들이 발견되고, 도박자 남편으로 인해 엄청나게 빚이 늘어나는 일들이 일어나면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중독자가 술에 취해서 폭력을 휘두르고도 다음날 기억을 못할 때에 이르러서야 가족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중독자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에 기대를 걸며 온 가족이 중독의 늪에 빠져드는 실수를 하게 된다.

가족들로서는 갑자기 불거진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덮어두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 것 같고, 달리 뾰족한 방법을 몰라서 일 것이다. 간혹 전화번호부나 신문 회복자료를 보고 전화를 걸어와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가족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이 바로 회복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말을 해 주어도 가족들은 자꾸 중독자의 말을 믿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모처럼 맞은 기회를 놓쳐버리기에 회복 시작은 다시 미궁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중독은 진행성 질병이다. 누구든 1~2번 손을 댄 후 감정변화와 생활태도 변화를 차례로 겪다가 나중에는 본인과 가족 전체의 삶이 망가져서 살고 싶은 의욕을 잃게 되는 예고된 과정을 따라간다.

회복을 시작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여러 가지이다. 어떤 가족은 전화나 온라인 상담을 한 지 1 년 만에 더 망가진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몇 달 회복모임 참여로 다소 안정되면서 처참했던 위기상황을 까맣게 잊고 회복을 중단했다가 1~2 년 후에 다시 모임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 부인은 중독자 남편에게 강도 높은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6개월간 별거를 해봤어도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 모임으로 나왔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4번이나 회복 모임에 나오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다시 이혼 파국을 맞고 있다. 별거나 이혼으로도 중독증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고야 모임에 나온 이 부인은 그간 꾸준히 참여하지 못했던 점을 뒤늦게 후회했다.

1 주일에 2시간만 회복모임에 참여하면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회복이론 습득은 물론 회복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차마 일반 사회나 교회에서는 말 못할 심적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런데도 중독자나 가족들은 자꾸만 혼자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가족들의 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 중독증인데 혼자서 계속 부여잡고만 있어서 안타깝다. 중독자들 중에는 부모 때문에 자신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탓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제는 계속 거부하는 바람에 조석으로 싸우는 가정들이 많다. 자녀들이 실어증이나 정서 불안증으로 시달리는 고통을 목격하면서도 아무런 회복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부모 탓보다 100 배나 잘못된 일이다.

중독증은 내 힘만으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들이라도 먼저 이를 인정하고 가까운 회복모임에 참여해서 다른 중독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 회복되었는지를 직접 보며 그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고 바른 회복 방법이다.

이해왕 선교사
한인 중독증회복 선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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